성불하세요

마음 이야기 2015. 6. 24. 09:07

불교철학에서의 가장 핵심적인 화두는 역시 싯다르타가 태어나자마다 외쳤다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온 세상 천지에 나혼자 잘났다 라는 선언처럼 들리긴 하지만 세상 사람들 모두가 스스로 홀로이 존귀한 존재라고 인식하고 선언하는 것. 그렇게 행동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의 모습. 스스로의 주인인 모습. 깨달음의 모습이 아닐까. 유학에서는 충효예의가 중요하여 군주, 부모, 스승, 남녀, 벗 등 다양한 사회적 관계와 그 도리를 확립하여 사회 속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사고하고 처신하는 것을 관습적으로 정의하고자 하는 것과 비교할때, 불교는 자아에 대한 깨닮음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 차이이다.

 

당나라 시대의 중심 사상이었던 불교사상에 대해 송나라 시대에 들어와 유학의 르네상스를 꾀한 유학자가 주희다. 그가 절묘하게 유학과 불교를 융합하여 내놓은 것이 바로 주자학 혹은 성리학이라 불리우는 신(新)유학인데, 그 내용을 설명하는 예가 우리에게도 '월인천강지곡'으로 익숙한 '월인천강'이란 개념이라 한다.

 

월인천강(月印千江).

'달은 천개의 강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라는 뜻이다. 직역하면 '달이 천 개의 강에 도장을 찍다'라는 뜻이지만.

월인천강은 성리학의 핵심개념이다. 바다든 강이든 개울이든 항아리에 고인 물이든 접시에 담긴 물이든, 흐르는 물이든 고여있는 물이든 굽이치는 물이든, 달 그림자는 다양한 모습으로 비추지만 결국 본질은 하나의 달이고 그림자는 자기가 담긴 물의 형태와 속성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 뿐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형태와 속성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이 '리(理)'이고 본질적인 달 그 자체는 '성(性)'이라는 것이 理卽性 이론이고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아마 성리학(性理學)의 어원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유학이면서도 불교적 흔적이 섞여있는 것이 주자학(성리학)이건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이 신생국 조선에 건너와서는 교조가 되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만큼 뿌리깊은 사대의식이 부끄럽기도 하고.... 조선 선비에게 요구된 자질이 결코 문(文)에 치우치지 않고 문무겸비를 요구했다 한다. 선비들은 풍광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음풍농월에 시화만 즐긴 것이 아니라 활쏘기도 즐겨 하고 양인들의 씨름판에도 적극 참여했다는데 어쩌다 성리학이 관념적인 교조로 굳어버리게 되었는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적 갈등의 관점으로만 보았을때 조선의 역사는 사화-당쟁-세도로 이어지는 500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나름의 이론적 정당성 획득을 위해 성리학에 들어있는 '자아에 대한 통찰'은 사라지고 '권위와 질서에 대한 복종'만 강하게 작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성과 자기 혁신의 힘을 잃고 결국은 망국을 피하지 못했던 조선을 돌이켜보고, 다른 사상(불교, 동학, 천주교, 실학 등)은 결코 용납하지 못했던 편협한 교조주의의 역사를 되새기지 못한 결과를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데,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2015년의 대한민국도 그에 비해 얼마나 나아졌나 돌아보면 암담하기 그지없다. 사회지도층은 부패와 비리, 서로서로 기득권과 권력의 씨줄낱줄을 '관행'이라 정당화하며 사상적 차별성은 '체제전복', '종북', '좌빨' 이라며 금기시한다. 역동적인 시민사회의 저항은 무뎌졌다. 4.19때는 중고등학생이 기폭제가 되었지만 30년이 지난 87년 민주화때의 중심 흐름은 대학생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현재, (수학문제같은) 순서대로라면 학생들이 아닌 시민들이 변혁의 기폭제이거나 중심이 되어야 하겠지만 그게 가능한 일일까. 중고등학생은 입시에 목매어 위태로운 사다리의 허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대학생들 역시 눈 앞의 미래조차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일반 시민들은 자신과 가족의 생계 뿐 아니라 생명까지도 스스로 지켜야 할 시대에 서 있으니.

 

결국 철학이라는 것, 사상이라는 것은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이고 사회를 지키는 토대가 된다. 다시 불어오는 인문학의 바람이 그러한 깨달음에 이르지 않는다면 인문학 열풍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요즘 들어 다시 들여다 보게 되는 철학책들을 읽으며 가슴 속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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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휘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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