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랫만에. 차분한 빗소리를 듣는 밤을 맞이한다. 툭.툭.소리가 들리는 것이. 내가 앉아 있는 이곳이 콘크리트 아파트란 것을 잊게 한다. 마치 어릴적, 슬래트 지붕 아래의 밤에, 마당의 장독대와 너른 토란잎 위로 빗방울 떨어지던 소리를 다시 듣는 것 같다. 

 

한명기 교수의 '병자호란'을 읽는 중이다. 읽으면서 느끼는 것인데.. 500년 가까이 지난 이야기건만, 그떄나 지금이나 부패와 무능, 그리고 철학의 부재는 여전하다는 점이다. 누구였나.. 이젠 이런 것도 가물가물하군.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던 것이..아마도 샤르트르 아니면 엘리엇일텐데...어쨌든. 뭐 좋다. 4월이 참 잔인하다는 것을 참 실감나게 해주는 2015년이다. 아니 2014년 4월에서 시작되었지만. 더한 것은, 4월이 끝나감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4월이 지난지 1년이 지났음에도 우린 여전히 잔인한 4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기가 막히다.

 

사람들은 무언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떄, 비 내리는 것을 하늘이 흘리는 눈물이라 표현한다. 민심은 천심이며, 백성이 곧 하늘이라는 고대 사상을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누구라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램. 누군가는 풀어주었으면 하는 소망. 속으로 삼키지 못해 꾸억거리는 슬픔을. 두 발 달린 짐승들은 외면하고 몰라주어도 하늘만은 알아준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위로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이제는 제발 좀. 더이상은 좀. 하지만 어쩌랴. 모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인걸...

 

툭.툭.거리는 빗소리가 좀더 굵어진 것 같다. 지나가는 자동차에 치인 물웅덩이 소리. 거기에 섞인 낮은 쿠르릉 소리. 읽던 책을 덮는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 책은 시간을 많이 두고 읽어야한다. 하긴 어떻게 읽든 소화불량이 될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역사평설 병자호란 1, 2권

저자: 한명기

출판사: 푸른역사

초판: 2013.10월

Posted by 행복휘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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